“반드시 좋아질 거라는 교수님의 격려,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만성염증탈수초다발신경병증으로 치료 중인 박건영 씨와 주치의 신하영 교수


훈련병 시절 처음으로 팔다리의 이상을 감지한 박건영 씨는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만성염증탈수초다발신경병증이라는 희귀 신경질환을 진단받았다.

이후 수년 동안 약간의 호전과 부작용, 때론 지지부진한 상태를 겪으면서도 성실하게 주치의의 치료를 따랐고, 최근 혈장교환술과 리툭시맙 치료를 받으면서 일상의 편안함을 되찾았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시작된 이상 증상

2018년 초, 박건영 씨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어린 시절부터 격투기 선수를 꿈꿔왔던 만큼 웬만한 훈련은 감당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훈련을 받으면서 양쪽 발가락이 저리고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이상이 지속되면서 몇 차례 진료를 받았지만 군 병원은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고, 근무지가 섬이라 대도시의 종합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았다.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10여 개월이 지나서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진료받게 되었다.

그 사이 건영 씨의 체중은 15kg 이상 줄었고, 감각 저하는 무릎 위까지 진행됐다. 건영 씨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당장 세브란스병원 신하영 교수(신경과)에게 가보라고 조언했다. “신하영 교수님은 저를 진찰하시더니 바로 입원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다음 날 바로 복귀해야 하는 일정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때 교수님이 직접 군대로 전화를 걸어 휴가 연장이 필요할 정도로 제 상태가 긴급하다고 설명해주신 덕분에 본격적으로 검사와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좋아질 거라는 희망

제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이유가 만성염증탈수초다발신경병증이라는 매우 드문 말초신경병증 때문임을 그제야 알게 된 건영 씨. 그는 수년 동안의 치료 과정에서 기대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실망스러운 순간에도 주치의를 굳게 신뢰했고, 몇 달 전 혈장교환술과 리툭시맙 치료를 받으면서 몸의 움직임이 확연히 좋아졌다.

“신하영 교수님이 분명히 더 좋아질 수 있다고 계속 확신을 주셔서 힘든 치료도 힘든 줄 모르고 받았습니다.”

뜻하지 않게 질병으로 꿈을 포기해야 했지만, 건영 씨는 힘든 상황에서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대학에서 호텔식음료학과 공부를 마쳤다. 그리고 지금은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앞서 체력 쌓기에 집중하고 있다. 몸이 더 회복되면 생활체육인대회에 참가해보겠다는 작은 꿈도 품고 있다. “균형을 못 잡던 예전에는 지하철 계단에서 미적거리면서 길을 막는다는 행인들의 타박이 비수처럼 꽂히기도 했어요. 팔다리에 힘이 생기니 같은 풍경도 다르게 보이네요. 저와 같은 병을 가진 환자분이 어딘가 계실 텐데, 꼭 좋아질 테니 포기하지 말고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힘 빠지고 휘청거리는 팔다리, 말초신경에 이상이 생겼다!

희귀 신경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믿음직한 동반자 신하영 교수


말초신경이 망가지는 질환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머리카락이나 손톱 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인체에서 감각을 느끼는 곳에는 다 말초신경이 존재하니까 말초신경병증 또한 굉장히 다양한 상황에 의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하게는 손발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신경이 오랫동안 눌려서 생기는 압박성 신경병증이 있고요. 당뇨병과 같은 전신질환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말초신경병, 항암제 같은 약물이나 중금속 같은 독성물질에 의해 발생하는 말초신경병,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의 이상으로 운동과 감각신경에 이상이 생기는 유전성 말초신경병증, 말초신경과 그 주변 조직에 종양이 생기는 경우, 혈관염으로 인해 말초신경의 기능이 떨어지는 예도 있습니다. 감염성 질환인 한센병, 최근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알려진 길랭-바레 증후군도 말초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입니다. 만성염증탈수초다발신경병증(CIDP, Chronic Inflammatory Demyelinating Polyneuropathy)은 길랭-바레 증후군과 아주 비슷하지만 증상이 급성이 아닌 만성으로 나타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만성염증탈수초다발신경병증, 이름부터 너무 어렵습니다. CIDP는 어떤 질환인가요?

신경의 주된 기능은 어떤 자극이 주어졌을 때 뇌까지 그 정보를 전달해서 알 수 있게 하는 것, 즉 정보의 전달입니다. 그래서 신경세포는 이 기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경세포의 핵에 마치 전선처럼 길게 늘어진 축삭이 연결돼 있고, 전선 피복처럼 수초가 축삭을 돌돌 만 형태로 둘러싸고 있지요. CIDP는 수초에 만성적인 염증이 발생해 수초가 떨어져 나가면서 신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질환으로, 면역반응이 관여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아직 명확한 발병 원리는 알 수 없고, 최근 일부 환자에서 존재하는 특정 자가항체들이 발병 기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모든 연령대에서 발병할 수 있으나 소아보다는 성인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환자들은 어떤 증상을 겪게 되나요?

주된 증상은 팔다리 근력 약화와 감각 이상입니다. 손발 가락이 저리고 감각이 둔해지는 증상이 나타나고, 사지의 힘이 약해지기도 하며, 균형을 잘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등 보행장애를 겪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상 반응이 양쪽에 대칭적으로 발생하며, 2개월 이상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들은 CIDP뿐 아니라 다른 신경근육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비교적 흔한 증상이고, 또 같은 CIDP일지라도 환자마다 호소하는 증상이 달라서 진단이 쉽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드문 희귀 신경질환이어서 워낙 환자 수가 적고 이 병을 다루는 전문의 역시 소수이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증상에 시달리다가 뒤늦게 진단을 받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진단을 위해서는 어떤 검사들이 필요한가요?

가장 기본은 전문의의 자세한 진찰을 통해 건반사 저하를 비롯해 CIDP에서 발생하는 특징적인 임상 양상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전기진단검사인 신경전도검사와 근전도검사를 시행하면 말초신경의 축삭과 수초 가운데 어떤 것이 주로 손상됐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뇌척수액검사, 신경의 비후를 확인하기 위한 영상검사, 특정 항체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혈액검사 등 다양한 검사가 진행됩니다. 무엇보다 CIDP는 단 하나의 소견만으로 진단할 수 없으며 매우 유사한 임상 양상을 보이는 다른 질환이 많아서 다른 질환과의 감별을 위한 검사들도 필요하고, 드물지만 신경조직검사를 시행하는 때도 있습니다.


희귀 신경질환이라 치료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치료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현재 CIDP에서 효과가 입증된 가장 중요한 3가지 치료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와 면역글로불린 정맥주사, 혈장교환술이며, 이 외에도 아자티오프린을 비롯한 다양한 면역억제제, 리툭시맙이라는 단일클론 항체 약물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치료법을 단독 또는 병용하며, 필요에 따라 근육의 위축을 방지하고 손상된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재활의학과의 협진을 통해 물리치료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이 중 코르티코스테로이드는 염증을 낮출 목적으로 처방하는데, 먹는 약이어서 접근성이 좋고 많은 환자에서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스테로이드는 얼굴이 붓는 부작용을 비롯해 장기 복용 시에는 당뇨병, 골다공증 등의 합병증이 따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면역글로불린이나 혈장교환술은 어떤 치료인가요?

면역글로불린 정맥주사는 불필요한 면역반응과 염증을 조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여되는 항체 혼합물로, 약 2~5일의 입원치료가 필요합니다. 혈장교환술은 마치 혈액투석을 하는 것처럼 기계를 통해 몸속의 혈액을 빼낸 다음 혈장을 분리해 제거한 뒤 알부민 같은 새로운 혈장단백을 넣어주는 치료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최근 약 5~10%의 환자들에서 CIDP 발병에 관여한다고 의심되는 NF-155, NF-186, CNTN1, Caspr1 등의 특정 자가항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는데요. 이런 환자들은 스테로이드나 면역글로불린보다는 혈장교환술로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혈장교환술은 이 질환과 연관된 자가항체를 혈장에서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시행합니다.

참고로 리툭시맙은 항체를 형성하는 B세포를 제거하는 약물로, 질환 연관 자가항체 형성을 억제해 자가항체 연관 CIDP의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발병 기전이 밝혀지고 새로운 치료법들이 등장하면서 치료 성적이 더욱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희귀질환이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빨리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불안감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여러 치료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나타나질 않아 힘든 환자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통해 증상이 점차 호전돼 직장생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환자마다 치료에 대한 반응이 달라서 자신에게 맞는 치료 방법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손상된 신경이 회복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요. 또 치료 과정에서 부작용이 따르기도 하고, 증상이 재발하기도 하고, 증상 호전 후에도 장기간 유지치료가 필요할 수 있어요. 그러니 환자로선 치료를 받는데도 왜 빨리 좋아지지 않는 건지, 대체 언제까지 힘든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는 건지 의문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치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CIDP는 의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적절히 치료하면 반드시 좋아지는 병이므로 포기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꾸준하게 치료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초신경병증 환자들을 위한 Dr. 신하영의 특급 조언

- 말초신경병증은 꾸준한 치료를 시행하면 천천히 좋아진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인내심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 특정 식품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 신경질환의 치료에는 왕도가 없다. 규칙적인 생활습관, 균형 잡힌 식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운동은 근육 위축을 방지하고 손상된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을 북돋워 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운동은 부상을 유발해 오히려 계획된 치료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운동 강도는 반드시 몸 상태에 맞춰 조절해야 한다.

- 증상이 상당 부분 호전된 후 자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말초신경병증, 특히 CIDP는 치료 중단 시 재발 우려가 크고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치료와 관련된 결정은 무엇이든 반드시 주치의와 충분히 상의하도록 한다.


신하영 교수(신경과)


신하영 교수 프로필 바로가기


만성염증탈수초다발신경병증, 길랭-바레 증후군, 중증근무력증, 다발경화증 등 말초신경이나 신경근육 접합부, 근육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신경근육질환을 전문으로 다룬다. 그의 진료실에서는 환자가 병 때문에 겪는 불편은 물론 소소한 일상이나 꿈에 관한 대화가 자주 오간다. 그러다 보면 진료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지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래서 신하영 교수는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미안해하지만, 오히려 환자들은 불평이 많지 않다. 자기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주치의의 진심을 알기 때문. 발병 기전이나 치료법이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 난치성 신경근육질환으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좋은 치료 동반자가 되고 싶은 신하영 교수는 보다 나은 치료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에디터 박준숙  포토그래퍼 최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