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병원 특집


아이들을 향한 마음 하나로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외과의 산증인, 황의호 명예교수





한 분야의 개척자는 언제나 고독한 선택을 감내해야 한다.

충분한 인프라도, 확실한 전망도 없던 시절.

그저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소아외과를 시작했던 이가 있다.

104년이라는 세브란스 역사 속에

세브란스 소아외과를 일구고, 수많은 후배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하는

황의호 명예교수.

그가 걸어온 길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들어본다.






소아외과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수련 학생이던 시절, 이세순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아외과 수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분으로, ‘소아외과의 아버지’라고 볼 수 있죠. 그 교수님과 함께 수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아외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소아외과라는 분야는 의료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의료 자원도 부족했고, 환자 수나 수익적인 면에서도 열악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선뜻 선택하지 않는 길이었죠. 그런 와중에도 저는 아이들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외과 부장님께서 “소아외과를 한번 맡아서 해보라” 하셨을 때, 자부심이나 사명감보다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 하나로 주저 없이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그 길을 걷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소아병원을 만들기 위한 여러 시도와 우여곡절 속에서 보람과 책임을 함께 느꼈습니다. 1975년쯤에 소아외과가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전문 진료가 가능해졌고, 저 또한 그 중심에서 소아외과라는 분야가 자리 잡는 과정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외과 인경 교수와 함께




후배 소아외과 의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199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점점 줄어들 것이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럴수록 “앞으로 소아외과의 전망이 어둡다”는 말도 자주 들었죠. 하지만 그런 예측에도 불구하고, 저를 포함한 많은 의료진이 소아외과에 헌신해 왔습니다.

제가 연수나 학회를 위하여 외국을 다녀보면, 소아외과는 단순히 ‘소아를 대상으로 하는 외과’가 아니라, 일반외과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집니다. 아이들의 수술은 기술적으로도 섬세함을 요구하고, 생리적으로도 어른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가장 복합적인 역량이 필요한 분야 중 하나입니다.

출산율 저하는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인구 수만을 바라보고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소아외과라는 분야가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큰 책임을 지고 있는지 더 크게 인식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소아외과는 단지 병을 고치는 일을 넘어서, 국가의 미래를 짊어진 아이들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이 곧 국가의 발전과 존립에 기여하는 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후배 여러분도, 이 길을 스스로 좋아해서 선택했다면 그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며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원 20주년을 앞둔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 대한 소회와 바람이 있다면요?


2006년, 세브란스에 어린이병원이 개원한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사실, 104년이라는 세브란스의 긴 역사 속에서 어린이병원이 이토록 늦게 개원했다는 점은 조금은 아쉬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소아 진료라는 영역이 오랜 시간 동안 제 역할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원 이후 발전 속도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소아과 분야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의료진의 헌신과 노력 덕분입니다. 저 역시 그런 발전을 지켜보면서 큰 기쁨과 희열을 느꼈고,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린이병원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지, 저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의료의 질은 물론, 연구와 교육 측면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병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병원이 되어주길 바랍니다.